지전 석장
김사인
꼴좋다 아큐여
그 잘난 나라여.
반만년이라더냐 조상의 빛난 얼이라더냐.
오냐 민족중흥이겠구나.
나라여
오냐 나여.
가는 세월 원통하구나.
제가 떠난 것이냐 누가 떠민 것이냐.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았구나.
더럽게 남았구나.
지전 몇장에 팔려 세월 가는 줄 몰랐구나.
세월인지 네월인지 안중에 없었구나.
기구하다 싸구려 허풍쟁이 똥걸레로구나.
백주대낮에
눈 뜬 채 코를 털렸으니
우스꽝스러운 피칠갑을 아무도 동정하지 않겠구나.
낄낄 웃겠구나.
손톱 젖혀지도록 할퀴어 잡으며 세월 가는 동안
공포와 비명으로 흘러가는 동안
물에 젖은 오만원짜리 석장!
꼴좋다 나여
아직도 꼭 쥐고 있구나.
국민소득이라고? 집값이 어쨌다고?
똥개야, 노느니 차라리 나라도 물어라.
이따위를 적고 있는 내 손목이라도 물어라.
종이나 울려라 개떼처럼 왕왕왕
입춘대길 만사형통
때늦은 입춘방이나 하나 그려
네 이마빡에 여덟 팔자로 붙여주마.
오냐 나여, 그래도 잠은 또 오겠구나.
배는 또 고파지겠구나 버러지처럼
오냐 나라여.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2015년
4월에 슬픈 시한편 있어, 여기에 옮겨 남긴다.
'마음의 단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탈 _ 김사인 (0) | 2016.03.09 |
---|---|
전단지 알바 (0) | 2016.01.18 |
따뜻하지 않다. (0) | 2015.12.14 |
정류장 (0) | 2015.10.24 |
가을 (1) | 2015.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