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탈


                                 김사인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자리에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저녁볕 기우는 초겨울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번 없이'....

참 정갈한 시구다. 내 마음을 한번에 때린다.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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