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꽃 _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가 군 복무 시절로 기억한다.

선 후임 사이에서 고된 훈련에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던 시절 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싸매고 또 참았던 시인의 감정을 일시에 풀어 헤치고, 

엉엉 울게한 그 동백꽃이 궁금 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나도 모든 감정을 무장 해제 하고 울고 싶은 계기가 필요 했는지 모르겠다.  


 가끔 맘에 들던 이 시를 적어다가 

야간 대공 근무지에서 혼자 여러번 읽어 보곤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하다. 

그때 전역 하면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라도 에서 온 후임병과 많이 이야기 했었다. 


 군대를 전역 하고는 복학 준비에, 취업 준비에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선운사는 자연적으로

내 기억속 깊은곳 한켠에서 잊혀져 갔었다... 

 

 그러다 입사를 하고, 1년차 봄이었던것 같다. 

하늘을 나는 차라도 금방 만들듯 하던 내 자신감은 간데 없고, 

능력으로 벽에 부딪히고, 의도와는 다르게 사수와 오해만 쌓여가는 힘든 시기가 나에게 찾아왔었다. 

그와 함께 내 자신감도, 자존감도... 바닥을 지나 지하로 파고 들던 시기였다. 


 5월 연휴 기간을 이용해 선운사에 훌쩍 다녀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계획 없던 친한 입사 동기와 함께 말이다. 

도라지 향이 진동하는 긴 평지 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 선운사에 들어 섰을때, 

염불 소리가 잔잔히 흐르는 넓은 경내가 내 맘을 평안 하게 해 주었다. 


다른 여느 절과는 다르게 평지에 가까운 경내를 거닐다가 

선운사 뒤안의 동백 숲 그늘에 잠시 앉아 보았었다. 

시인이 시에서 노래 했던것 처럼 감정이 격하게 터져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이에 솟아서는 위협적이지 않게 내려 앉은 선운산을 바라 보며, 

염불 소리와 대웅전 처마 끝을 한참을 바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때의 느낌을 정확하게 글로 적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힘들고, 시간에 쫒기는 일상을 보낼때면, 

가끔 그때의 그 선운사 경내와 동백 그늘 밑의 봄향기 머금은 바람을 떠올리며 마음의 평안을 찾곤 한다. 

 

  시인이 선운사 동백꽃을 보며 느꼈을 감정을 나는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 선운사 뒤안은, 나를 내려 놓고 찬찬히 시간을 바라 볼 수 있는 공간인것 같다. 



- 김용택 시인님의 시로 시작해서는, 선운사 기행록으로 글이 흘러 버렸다. 

  아직 글쓰기 내공이 많이 부족 한가보다...